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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찾기"는 다음과 같은 복잡하고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학문적 보물찾기"라고 할 수 있다.
1 먼저 "뿌리 찾기" 신청이 들어오면 본인의 [호적등본]을 제출하게 한다.
2 제출된 본인의 호적등본에 의하여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제적등본]을 팩스민원 처리 시스템에 의하여 징구한다.
3 제적등본으로 추적한 부(父), 조(祖)의 자료로서는 대개 고증연대가 100년내에 머무르기 때문에 직접 원적지(原籍地)로 출장하여 증조(曾祖)이상의 상대(上代)를 조사하고 지방 원로(元老)들을 상담하며 선산(先山)이 있을 경우에는 이곳도 직접 답사(踏 査)하여 필요한 고증자료(考證資料)를 모두 취합(聚合)한다.
4 취합된 고증자료에 의하여 가계도(家系圖)가 작성되고 이를 토대로 열람(閱覽)해야 될 족보(族譜)를 선정한다.
5 전국에 산재(散在)한 족보의 리스트에 의하여 그 족보의 소장처(所藏處)를 확인하고 그곳에 출장한다. 부산 시내에서 열람이 가능한 경우에는 시내 출장으
로마무리 될 수도 있지만,부산에 있는 자료가 빈약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서울의국립중앙도서관이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장서각(藏書閣) 도서, 서울대학교내의 규장각(奎章 閣) 도서를 열람조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방소재 도서관이나 개인소장 족보를 열람하기 위하여 전국 어느곳이라도 출장한다.
6 세거지(世居地), 연대(年代), 배위(配位), 관직(官職)등을 비롯한 제반 기록을 대조하여 1500년대 이후 현재까지 발간된 모든 족보를 섭렵(涉獵)하고 상호 대조해 가면서 본인의 선대(先代)임을 확인하고 그 부분을 복사하여 돌아 온다.
7 신청인을 불러 설명하고 복사물을 교부(交付)하면 "뿌리 찾기"는 일단 완결된다. 만약 부(父)이상의 선조명(先祖名)이 족보상,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모든 정황(情況)을 종합하여 끊어진 계대(系代)를 삼위일체(三位一體)의 방법에 의하여 확인하고 당해 종친회(宗親會)의 검증(檢證)을 거쳐 이를 재삼(再三) 확인한다.
8 "뿌리 찾기"가 완료된 신청인은 거의가 족보(대개의 경우 家牒) 편찬을 의뢰하는데 이 경우에는 뿌리 찾기에 소요된 비용을 감안하여 20%의 할인된 편찬비로 발간(發刊)할 수 있다.
난 1998년 6월에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는 "최"모씨가 부산 고관입구에 있는 "한국보학연구소"를 찾아왔다. 한국보학연구소(韓國譜學硏究所)는 22년의 전통을 가진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족보 전문 연구소이며 "도서출판 뿌리"를 직영하고 있어 많은 족보를 편찬(編纂),발간(發刊)한 족보 전문 종합 연구, 발행소로서 소장류종현(柳宗鉉 : 현 한국보학회장)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족보 권위자이다.

씨의 본적은 전남 해남군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 원적(原籍)은 북한의 황해도 옹진으로서 그의 할아버지가 해방 직전에 상업차 전라도에 와서 있다가 갑자기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전남 해남에 눌러 살게 됨으로서 그곳이 본적이 되었으며 할아버지는 40여년 전에, 아버지는 20여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뿌리를 찾지 못하여 통한의 한을 먹음은 채 이제 통일이라도 되어 황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식들에게도 조상님들을 알려 줄수 없어 마음만 아팠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어느 사람으로부터 "한국보학연구소"에 찾아가면 북한 사람들도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방문했던 것이다.

종현 소장은 저간(這間)의 사정을 듣고 최씨 할아버지의 제적등본을 떼어오게 하여 여기에 기재된 원적지와 최씨의 본관(本貫)이 해주(海州)임을 확인하고 국내에 있는 "해주최씨"족보가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전국에 9질 60여권이 소장되어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전남 해남에는 전혀 근거될만한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바로 서울에 출장하여 해주최씨 족보, 특히 북한에서 발행된 족보를 중점적으로 조사하여 두차례 3일간의 출장으로 그의 뿌리를 명확하게 찾아 내었다. 그리하여 신청인 최씨는 해주 최씨 충헌공파(忠憲公派) 30세손으로 항열(行列)은 비우(雨)자임이 확인되었고 그동안 이름도 몰랐던 증조(曾祖) 이상의 선조님들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동안 소요된 총 경비는 42만원, 그러나 몽매(夢寐)에도 소원하던 뿌리를 찾았으니 비용이 문제이겠는가. 사실 최씨는 설사 비용이 몇백만원이 들더라도 뿌리만 찾을 수 있다면 아까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뒤에 실토하였다. 찾은 족보를 알뜰히 복사하여 모셔 온 것을 받아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한 최씨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그 복사본을 가슴에 쓸어 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리를 잃지 않고 대대로 족보를 모시고 있는 분들은 실감이 안나겠지만, 조상을 알지 못하여 종친회나 일가들의 모임에도 나가 보지 못하고 조상님들의 영전에도, 자식들에게도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마음 조리던 생각을 하면 왜 아니 그렇겠는가! 최씨는 너무나 감격하고 기쁜 나머지 바로 제자리에서 280만원에 가첩 20권을 편찬하기로 계약하였다. 약 2개월여만에 새로운 체제로 국역(國譯)과 서기(西紀) 연대까지 병기(倂記)되고 양장본(洋裝本)으로 곱게 꾸며진 가첩을 받아 들고 그는 또 한번 눈물을 쏟아 내었다. 집으로 가첩을 모시고 가서는 자식들은 물론이요 4촌, 5촌, 6촌, 외손들이며 딸,사위까지 모두 불러 놓고 가첩앞에 제상(祭床)을 차리고 몇번이나 절하며 조상님을 찾은 기쁨과 보람을 고유(告諭)하였다고 한다. 이제 최씨는 종친회에도 떳떳이 나가면서 행여 족보가 없어 혼인에 수치라도 당할까 염려하여 미루어 왔던아들의 결혼식도 올리고 따님도 큰 소리 치면서 좋은 사위를 가려서 시집 보냈노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한국보학연구소, 한국보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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