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첩이야기
보첩의 기원
보첩의 종류
보첩의 일반상식
제례법
친족촌수계촌법
묘지물명
근친간칭호법
고금관작대조표


 
  보첩(譜牒)은 원래 중국의 6조(六朝) 즉, 오(吳)·동진(東晋)·송(宋)·제(齊)·양(梁)·진(陳) 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특히 북송(北宋)의 대문장가인 3소〔三蘇‥소순(蘇洵)과 그의 아들 소식(蘇軾)·소철(蘇轍)〕에 의해서 만들어진 족보는 그 편제(編制)와 규모가 매우 우수하여 그 후부터 족보를 편찬하는 사람이 대개 이를 표본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소보(蘇譜)라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말엽부터 족보가 시작되었다고 하나 오늘날 전해진 것은 없고, 단지 역대왕실 歷代王室)에 「세보(世譜)」가 있었을 뿐이며, 사대부(士大夫)의 집에 겨우 가승(家乘)」이 마련되어 왔다. 가장 체계를 갖춘 족보는 1476년(성종 7)에 인간(印刊)된 「안동권씨성화보 (安東權氏成化譜)」인데 서문(序文)이 서거정(徐居正)의 찬(撰)으로 되어 있다.
보첩(譜牒)은 한 종족(宗族)의 역사이며, 생활사(生活史)인 동시에 혈통을 실증(實證)하는 귀중한 문헌으로서 동족(同族)의 여부와 소목(昭穆)의 서열(序列) 및 촌수(寸數) 분별에 지극히 필요하다. 인간의 역사는 각자가 태어나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선조(先祖)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선조와 자신의 역사를 담은 보첩(譜牒)을 후세에 전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귀감(龜鑑)이 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안의 역사를 알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족보를 우리나라에만 있는 봉건적 유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나 이는 대단한 착각이며 망상이다. 족보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고 단지 그 규모나 내용에 있어 우리 것과 비교가 안 될 만치 빈약할 뿐이지, 족보에 대한 열의는 우리들 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근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족보에서 누락된 것을 뼈저리게 한탄하며 선조(先祖)을 원망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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