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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김정열 E-mail ineedth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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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일 파일없음
제 목 베트남 망명왕손 후예인 화산이씨(花山李氏)
1226년 베트남 대월국에 역모가 일어나 왕족이 몰살의 위기를 당한다. 이 때 왕의 숙부가 배를 타고 피난길에 나섰는데 배는 풍항을 만나 멀리 한반도 웅진반도에 기착하게 된다. 대월국은 사라지는데 그 왕족의 핏줄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최근 후손들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이태조의 직계왕손으로 극빈대우를 받았다. 드라마 같은 희한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화산 이씨이다.
많은 왕조가 끝바꿈했던 베트남에서 이왕조는 215년이라는 비교적 영속한 왕조였다. 9대 계승된 이씨 왕조는 전(전) 4대까지는 선정을 베풀고 국토도 늘리곤 했으나 후(후) 5대에는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척신인 진수도(진수도)가 권모술수를 써 무능한 마지막 임금 혜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뒤 절에 연금시켰다. 그리고서 일곱 살 난 왕녀를 임금으로 받들고 그의 나이 어린 조카로 하여금 여왕과 결혼시켜 저항 없이 이씨 왕조를 진씨 왕조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씨 왕족의 반동을 두려워하여 진수도는 연금시킨 혜종을 자결토록 유도하고 혜종의 장례날을 기해 계략을 세워 모여든 이씨 왕족을 몰살해버리려 했다. 이 흉계를 눈치채고 유일하게 빠져나온 것이 혜종의 숙부인 왕자 이용상(李龍祥)이다.
항숙 이용상은 추적을 피하여 바다에 배를 띄우고 정처없이 중국쪽으로 떠나갔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베트남 최초의 보트 피플이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바람부는 대로 흘러 흘러 와닿은 곳이 한반도 황해도 옹진반도 화산이었다. 마침 몽골군의 남하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을 때로 이 월남 왕자는 몽골군을 막아내어 조정이 알게 되었다. 안남국 왕자의 표착 사실을 보고 받은 고려 고종은“내 자손도 훗날 만일 저 같은 일을 당하면 이 공자와 무엇이 다르겠느냐”면서 옹진군 마산면 일대 30리 30호 주민으로 식읍을 삼게하고 본관을 화산(花山)으로 하는 이씨(李氏) 사성을 했다.
[화산이씨(花山李氏)의 정사세보]에 따르면 시조 이용상(李龍祥)은 안남왕국 교지군왕 이공온(李公蘊)의 7세손이며, 안남왕(安南王) 이천조(李天祚의 둘째 아들로 1226년 변란을 피하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 동래(東來)하여 황해도 옹진 화산에 정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도 화산 인근에는 이 월남 왕자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한다. 몽골군의 침입을 막고자 쌓았다는 안남토성이 남아있고, 그가 고국이 그리워질 때마다 조국쪽을 향해 통곡을 했다는 월성암(월성암)이며, 이씨 왕조의 시조 이름을 딴 남평리(남평리), 그리고 월남의 나라 이름인 교지리(교지리)가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
800년 가까이 이국 땅에 뿌리를 내려온 화산 이씨가 시조 이용상왕자 이래 귀향의 한을 푼 것은 지난 1992년 한·베트남 수교가 이뤄지면서였다. 이때부터 종친회는 한·베트남 민족문화교류협회를 두고, 이창근씨(37·성일전기대표)가‘이용상 왕자 기념사업회’를 결성했다. 이용상 왕자 직계 후손인인 이씨는 92년 한-베트남국교정상화 이후 첫 주한베트남대사였던 [푸빈]씨의 주선으로 처음 조상의 땅을 밟았다.
첫 방문길에 이씨를 둘러싼 촌로들은 [뒷산의 나무가 다 베어지고 개울이 메워지면 그 후손이 돌아온다]는 마을의 전설이 이뤄졌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이왕조 후손들이 화를 피해‘웬’으로 성을 바꿨으나 한국에서 이용상 왕자의 후손들이 찾아오자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화산이씨 문중회장 등 한국의 후손들은 꾸준히 베트남 이씨 왕조 유적지와 베트남의 후손들을 방문하고 있다. 종친회는 하노이 대학에 화산 이씨 족보와 ‘이용상 왕자 수항문기적비문 병풍’을 기증했고 이왕조 시조에 대한 추모 행사에 참여했고, 문중 중심으로 베트남에 민간투자도 추진했다.
베트남은 정부차원에서도 이 왕조가 출범한 날을 성대하게 기념한다. 하노이에서 베풀어지는 이 식전에는 한국의 화산 이씨 종친들이 초대된다. 왕족격인 화산이씨 종친들은 출입국관리로부터 자잘한 요금이나 세금에 이르기까지 귀빈 대접을 받고 베트남 국민과 법적으로 동등 대우를 받는다.
물론 그동안 대월 사기와 화산이씨 족보 등의 대조를 통해 역사적 확인작업도 거쳤다. 그동안 베트남 현지에선 이씨 뿌리찾기가 계속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 왕손 직계후손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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