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상(丁夏祥)
▷ 인물설명
1795(정조 19) - 1839(헌종 5) 약종(若鍾)의 둘째 아들, 실학자(實學者) 약용(若鏞)의 조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아버지와 형이 순교, 어린 시절을 어머니·누이와 함께 보냈다.1813년(순조 13) 홀로 상경하여 여신도(女信徒) 조증이(趙曾伊)의 집에 머물면서 교회 재건에 노력했고, 그후 더욱 깊이 교리를 배우고자 함경도 무산(茂山)에 귀양가 있는 조동섬(趙東暹)을 찾아가 교리와 한문(漢文)을 배웠다.서울에 돌아와 신부 영입운동을 전개하다 1816년(순조 16) 동지사(冬至使)를 따라 북경(北京)에 가서 신부의 파견을 요청, 그후 9차례나 북경(北京)에 드나들면서 신부 파견을 교섭했다.1825년(순조 25) 유진길·이여진(李如眞) 등과 연명(連名)으로 직접 로마 교황(敎皇)에게 신부 파견의 필요성을 호소, 다음해 조선교회(朝鮮敎會)를 북경교구(北京敎區)에서 분리하여 파리 외방전교회 산하에 새로이 조선대리감목구(朝鮮代理監牧區)를 설치, 브뤼기에르 주교(主敎)를 초대 감목 대리(監牧代理)로 임명케 하는 데 성공했다.그 후 중국인 신부 유방제(劉方濟)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서양(西洋)의 신부들을 맞아 들이는 등 전교활동을 했고, 신학 교육을 받고 성직자의 대상을 올랐으나 1839년(헌종 5)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사소문 밖 형장(刑場)에서 사형되었다. 1925년 복자(福者)의 위(位)에 올랐다. 나주파(羅州派)